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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세대의 놀이
: 박병래의 영상작업에 대한 노트

유운성 (영화평론가)

“떳떳한 놀이란 얼마나 드문 것인가!” (Il y a si peu d’amusements qui ne soient pas coupables!)
‒ 보들레르, 「가난한 사람의 장난감」 (Le Joujou du Pauvre)

2011년에 미디어아트 채널 『앨리스온』 을 통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병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 지역이나 역사라는 키워드 외에도 […] 우리 세대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7~80년대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의 세대. 물질적으로는 여유로움이 있었지만 전 세대와는 다르게 정신적인 상상력이랄까 이상이랄지 이러한 정신적 측면은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세대… 뭔가 일어났는데 다른 것을 통해 그걸 보았던 그러한 세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뭔가 일어났는데 다른 것을 통해 그걸 보았던 그러한 세대”라는 표현이다. 박병래 작가(1974년 여수 출생) 와 같은 또래이며 전라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는 이러한 표현에 담긴 희미한 열망과 아쉬움을 흡사 내 것인 양 쉬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와 나의 세대에게 있어 역사란 어떻게 감지되는 것이었는지, 이전 세대에 비하면 너무 늦게 도착했고 이후 세대에 비하면 너무 급히 떠밀리듯 도착했다는 감각은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되었는지를 여기서 따져보고 싶지는 않다. 이 지면에 어울리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개인적 토로를 일반화하는 경우 자칫 주제넘은 일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할 듯싶다. 박병래의 영상작업은 유년기를 역사적으로 맥락화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 할 사적 추억의 저장고를 지니지 못한 세대가 유년의 사막에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 비인칭적 기억으로 (탈)구축하는 일에 가깝다고 말이다.

박병래의 영상작품은, 때로 몇몇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주로 전시를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고, 오늘날의 미술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것의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의미나 의의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리뷰되곤 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을 가로지르는 가장 두드러진 주제적 강박이라 할 ‘놀이’(game/play) 마저도 곧바로 심리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동기와 연계되어 이야기되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동기와의 연계가 거의 없어 보이는 놀이의 작업인 <화포異景>(2014)이, 이때까지의 박병래의 작업을 포괄하는 중요한 작품임에도 (영화계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계에서조차) 거의 무시되다시피 했던 것은 대단히 징후적이다. 우리는 저 추억 없는 세대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박병래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영상작품에 놀이는 있어도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이야기란 존재하기 않기 때문이다. 혹은 그에게 있어 놀이는 곧 이야기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이야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일종의 관습적 화법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말을 “놀이를 하고 싶었다”로 바꿔 읽어야 한다. 기억을 (탈)구축하는 넝마주의의 놀이, <반달게임>(2007)에서 최근의 <유틀란디아>(2015)에 이르는 박병래의 영상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놀이의 조건을 가늠해보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목표도 지니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반달게임>은 1980년대 초반 한국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는 놀이에 대한 안내자막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반달’이라고 언급되고 있는 놀이는 ‘이랑타기’ 혹은 ‘삼팔선놀이’라고 알려져 있던 놀이가 약간 변형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군을 늑대와 여우로, 김일성을 돼지로 묘사한 반공 애니메이션 <똘이장군: 제3땅굴편>(1978)에서 발췌한 영상클립이 이어진다. 이것이 남북의 대치라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감각을 여러 간접적 매개를 통해 흡수했던 세대의 유년의 사막에 흩어진 파편들 가운데 일부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반달게임>은 이 파편들로부터 출발해 자기 세대의 무의식을 답사하거나(비판적 회고), 그것들을 어루만지며 거짓 추억의 대상으로 삼거나(멜랑콜리), 그것들로부터 현재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는(알레고리) 등의 쉬이 짐작 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한 움직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잡는 것이다. 작가 자신이 연기한 한 인물은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나무 모양의 백색 구조물들이 군데군데 세워져 있는 세트를 배회한다. 이 추억 없는 텅 빈 유년의 공간에서, 그는 구조물 가운데 난 구멍을 발견하곤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나무에 난 구멍이 다른 세계와 통한다고 여기는 익숙한 유년의 상상.) 그러자 우주공간처럼 보이는 또 다른 텅 빈 공간 속에 놓인 백색 입방체 틀 속에서 조타륜을 다루던 인물이 균형을 잃고 격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조타륜으로 하늘을 나는 배나 우주선의 키를 조종한다는 상상 또한 7~8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던 이들이 간혹 접하던 만화나 동화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일 터이다.) 하나의 공간과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 그리고 이러한 건드림을 통해 유발된 흔들림으로부터 균형을 회복하려 드는 것, 이는 <반달게임>과 <고무줄놀이>(2008)에서 놀이의 리듬이 전개되는 데 있어 동일한 구조적 원리가 되고 있다. <고무줄놀이>의 경우, 역시 텅 빈 검은 공간을 배회하던 인물이 거울에 붙은 고무줄을 발로 건드리면서 일련의 반복적인 고무줄놀이가 촉발된다. 그의 거울상이 그와 무관하게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놀이를 통해 두 공간을 잇는 선(고무줄)을 다시 조율하려는 그의 반복적 행위는 거듭해서 변주되는 리프(riff)에 가까운 것이 된다. 반면, 일렬로 쌓인 형형색색의 장난감 블록들이 거듭 화면에 등장하지만 그 무엇에도 건드려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 <유틀란디아>에서 끝내 놀이는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사람 없이 오가는 스키 리프트, 텅 빈 테니스 코트, 바다와 사막과 초원의 풍경을 보게 될 뿐이다.

건드림이 불현듯 유년의 사막에 흩어진 파편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파편들은 더 이상 그 무엇의 환유도 아니다. ‘빨갱이 돼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은 더 이상 7~80년대 반공교육의 우스꽝스러움을 환기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그 가면은 그 무엇도 아닌 그저 가면으로 박병래의 공간으로 들어온다. 조타륜, 거울, 반달 및 고무줄놀이 역시 마찬가지다. 남은 것은 이 파편들로 여전히 놀이가 가능한지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다만 이들 가운데 가면이 모종의 특권적인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것이 <째보리스키 포인트>(2011)의 주인공 (박병래 자신이 연기한) 째보의 헬멧과 마찬가지로, 얼굴(face)마저도 하나의 초-얼굴(sur-face)로, 아무 것도 환기시키지 않는 표면으로 바꿔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달게임>과 <고무줄놀이>는 놀이의 도구, 놀이의 공간 그리고 놀이의 주체 모두를 환유가 작동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환원시킨 다음에 놀이의 리듬 자체를 감지하려는 시도다. 이처럼 놀이의 영도를 가늠해보는 것이야말로, 추억 없는 세대가 어떤 아쉬움이나 열망도 없이, 자신의 유년이란 정말이지 투명하게 가난한 것이었음을 마음으로 오롯이 긍정하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점에서 박병래의 정치학은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함의나 상징이 아니라 그가 작품을 통해 거듭 수행하는 벌거벗은 놀이의 명랑한 긍정 자체에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박병래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보는 우리 또한 조급하게 놀이로부터 역사로 비약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의 작업에서 실제의 풍경이 텅 빈 검은 공간을 대체하는 것은 <째보리스키 포인트>에 이르러서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군산 지역의 장소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전시 공간이라는 환경 속에서 이 작품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하기엔 유용하겠지만, 정작 <째보리스키 포인트>가 놀이와 역사 사이에서 유지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을 감지하는 데는 자칫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이 작품에는 황무지, 버려진 건물, 째보가 보거나 만지거나 그러모으는 사물들이 등장하지만, 우리는 어떤 정보도 없이 그저 그것들을 바라볼 뿐이다. 째보는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무기나 장비랍시고 몸에 걸치고 (어쩌면 역사적인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을지도 모를) 황폐한 장소들을 배회하며 ‘비밀기지’ 따위를 만들며 놀곤 했던 한때의 아이들을 닮았다. 째보의 행위는 순천만 화포갯벌을 배회하며 이런저런 소리(소음)를 만들어낼 사물들을 주워 한 곳에 모으는 <화포異景>의 즉흥음악가 최준용의 퍼포먼스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사물들을 환유로부터 해방시키면서 그것들이 내는 ‘가난한 소리’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최준용과 유사한 작업을, 째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행하는 중이다. 째보가 등에 메고 있는 장비에는 탐침기 같기도 하고 분무기 같기도 한 튜브가 연결되어 있는데, 이로써 그의 행위는 ‘조사’만이 아니라 ‘소독’으로도 읽힐 수 있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째보의 새로운 여행 또한 그의 ‘베이스캠프’(원형으로 배열된 나무말뚝들)를 튜브에서 분사된 액체로 꼼꼼히 소독한 이후에라야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가 폐허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의 존재와 가치를 인지하게 된 이들이 쉽사리 빠져드는 정념은 멜랑콜리다. 때로 그러한 정념은 곧바로 역사의식과 등치되기도 한다. 수집가적인 열정이 거기 뒤따를 때도 있다. 그런데 나는 박병래가 말한 저 가난한 세대에겐 추억의 저장고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어둡고 텅 빈 임시 스튜디오, 사막과 황무지, 그리고 바다처럼 정주가 불가능한 곳이야말로 그들의 공간이다.) 째보는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는 건드리고, 확인하고, 소독하고, 떠나는 자이다. <화포異景>의 최준용 또한 아무 것도 수집하지 않는다. 그가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그러모으기는 하지만, 갯벌 한복판에 있는 그것들은 밀물이 오면 쓸려나가고 말 것이다. 그는 사물들의 소리를 듣고 떠나는 자이다. 아무데도 아닌 곳(nowhere)에서 절대적으로 지금/여기(now/here)에 속하는 움직임을 수행하고 떠나는 최준용의 모습에는 박병래의 영상작업에서 변주되었던 유형의 인물들이 고스란히 겹쳐진다. (최준용이 ‘작곡’하고 실행한 실험적 즉흥음악 공연 가운데 수백 개의 탁구공을 정해진 주기에 따라 떨어뜨리는 <튀어오르다. 떨어지다>(2011)를 박병래의 영상작업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영상작업의 역설은 이처럼 한시적인 퍼포먼스를 무한히 반복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추억 없는 세대의 기억을 (탈)구축하는 현행(現行)적인 놀이를 아카이빙한다는 것, 박병래의 영상작품들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긴장이다. 새로운 여행을 떠날 채비를 마친 째보가 베이스캠프 한가운데서 돌연 자치기 놀이를 할 때, 긴장으로 한껏 팽팽해져 있던 <째보리스키 포인트>는 우리에게 일종의 청량감을 선사하면서 (베이스캠프가 형상화하고 있는) 반복의 원환을 무효화하는 열림으로 향하는 것이다.

놀이와 역사적 감각이 만날 수 있을까? 순진하게 놀이를 행하던 과거를 돌이켜보고, 그때의 놀이를 둘러싼 배경들을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방식이 아니라, 놀이를 전적으로 놀이로 수행함으로써 말이다. <유틀란디아>에서 박병래는 이례적으로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언급한다. (덴마크 뮤지션 킴 라르센의 노래 가사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파견되었던 덴마크 국적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에 대해 알려준다.) 박병래가 틈틈이 기록해 온 풍경들이 <유틀란디아> 곳곳에 배치되어 있지만 이 파편들로부터 촉발되는 놀이는 없다. 그저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일렬로 쌓인 회전하는 블록들을 통해, 놀이의 순간이 도래할 것임을 예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놀이를 수행할 이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어쩌면 조만간 우리는 가면도 헬멧도 없는 째보, 저 가난한 세대의 방랑자가 놀이를 전적으로 놀이답게 수행하면서 마침내 맨얼굴로 역사와 대면하는 진기한 광경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